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몬 페레스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폴란드]]의 비슈니예프(현재는 벨라루스의 비시네바)의 [[유대인]] 집안에서 태어났다. 출생 당시 이름은 시몬 페르스키(Szymon Perski)였다. 1934년 [[팔레스타인]]으로 이주하였고, 키부츠에서 일하며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다. 페레스는 20대에 정계에 입문해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인 [[다비드 벤구리온]]의 비서를 맡기도 하고 이후 외무장관, 국방장관 등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. 1984년에는 리쿠드당 이츠하크 샤미르 당수와 공동 총리를 맡는 등 3차례 총리를 역임했다. 94년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출범시킨 오슬로협정 체결의 공로를 인정받아 [[이츠하크 라빈]] 총리, [[야세르 아라파트]] 팔레스타인해방기구(PLO) 의장과 함께 [[노벨평화상]]을 수상하기도 했다. [[팔레스타인]] 문제에 있어서는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를 주장하고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통한 평화정착 방안을 지지하는 온건파지만, 이스라엘의 [[핵]] 보유와 관련해서는 초기 이스라엘의 핵 프로그램을 이끄는 등 강경한 핵 지지자이다. 아랍인이나 이란이 보기에 [[시오니스트]]들은 그놈이 그놈이다 하겠지만, [[이츠하크 라빈]]이나 페레스 본인은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해 강경파인 [[베냐민 네타냐후]], [[아리엘 샤론]]에 비하면 그나마 가장 온건한 편이다. 그리고 라빈이 [[하레디]]에게 [[암살]]당하면서 페레스도 그 다음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와 엄중한 경호를 받아야 했다. 이스라엘 극우 극단파들에겐 비난도 많이 받았는데, 살아생전 [[알 자지라]]와 인터뷰를 한 다음에 이스라엘 언론에서 '''알 자지라가 이스라엘 꽉 막힌 방송이나 언론보다는 훨씬 말이 통하던데요. 알 자지라가 무조건 친아랍이라고 하면서 욕만 하는 우리 이스라엘 언론인들, 거울이나 보시죠?"라고 자국 언론을 디스하기도 했다. 유일하게 알 자지라와 인터뷰한 이스라엘 최고위 정치인이기도 했다. 2007년 6월 모셰 카차브 대통령이 임기 종료를 앞두고 성추행 혐의로 직무가 정지되자 페레스는 국회 간선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2014년 임기를 마쳤다.[* 이스라엘은 내각제라 대통령의 실권은 없으며 주로 존경받는 원로 정치인이 선출된다.] 2012년에는 [[유대계 미국인|미국 유대인]]들의 정계 모임인 AIPAC에서 이란의 핵문제에 대해서 연설을 하였으며 이 모임에 [[버락 오바마]] 대통령도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. 시몬 페레스를 오바마 대통령이 상당히 존경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며 이날 비공식적인 면담도 가졌다고 한다. 2014년에는 [[베냐민 네타냐후]]의 '유대민족 국가법'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. 2016년 9월 13일에 [[뇌졸중]]으로 쓰러졌으며, 28일 오전 숨을 거두었다. 이때의 나이가 93세로 꽤나 장수했다. 이날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치인들 역시 페레스의 죽음을 슬퍼했다. 또한 앞서 사망한 샤론 전 총리를 비판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자 [[마흐무드 압바스]]도 페레스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조문하였고, 샤론을 거칠게 비판한 [[하마스]]도 페레스의 죽음에 대해서는 수위를 낮춘 비난을 하였다. 2021년에 성추행 피해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[[https://m.yna.co.kr/view/AKR20211017041500079?section=international/all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